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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바라보기

그리워했던 저 너머에서 발견한 세상의 진리

오랫동안 이 주제를 다룬 글들을 하나로 모아 정리했습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도시의 모습(안동, 서울, 울산, 대전) - 본인 촬영


고3, 수능의 압박과 지루함이라는 창살 없는 감옥에서 지낼 때였다. 쉬는 시간이 되면 다들 친구와 담소를 나누거나, 밖에서 놀고 있을 때 나는 가지고 온 망원경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 현란한 광고판, 빽빽하게 보이는 성냥갑 아파트 그리고 실핏줄 같은 도로와 차들… 360도 파노라마를 보듯 망원경으로 학교 주변을 감상했다. 그러다 아파트 창문을 보며 생각했다.

‘저 너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으리으리한 인테리어에 큰돈을 벌며 살고 있을까?’

어디를 가던 자신의 직업과 소득, 환경에 따라 살아가는 건 마찬가지지만 공부라는 틀에 갇혀 지내던 나에게 저 너머는 새로운 세상으로 보였다. 수능을 쳐서 대학에 들어가면 언젠가 저 너머에 살 기회가 생길거라 믿었다.

시간이 흘러 병역의 의무를 지려고 훈련소에 입소하면서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농촌과 도시가 섞인 광역시의 변두리에 있었는데, 철책선 너머에 집, 도로, 논밭이 자주 보였다. 같이 있던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여기는 바깥과 고립된 섬’이라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저 너머에 대한 그리움이 삶에 자리 잡았다. 숱하게 바라보고 가봤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바라볼수록 푸른 하늘과 구름이 오라고 손짓한다. 도로를 달리고 다리를 건너면 저곳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곳도 저곳도 여러 직업, 환경의 사람이 똑같이 하루를 사는데 왜 특별하게 느꼈던 걸까?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 동안 조금씩 변했다. 익숙한 풍경이 달라지고, 새로운 풍경도 생겨나고, 지나치느라 보지 못했던 풍경도 보였다.

그제야 익숙함과 새로움이 시간을 만나 하나의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모습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사는 나도 같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까? 당장 하는 일도 날마다 다른데, 새로 시작하는 일도 그렇지 않을까? 오랫동안 익숙한 환경에 살던 내가 왜 이런 데 꽂혔는지 생각했다. 한자리에 똑같이 굴러가는 삶의 익숙함에 대한 무의식의 반항이었다.

사람들은 더 나은 미래를 바라며 불합리한 현실에 반항하려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안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겪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렇게 어떤 이는 취업하고 출세하기 위해 청춘을 바치고, 다른 이는 불합리한 현실에 저항하기 위해 촛불을 들고, 누군가는 아픈 과거를 두려워하며 방패로 맞선다. 다른 곳도 돌아보았다. 어떤 이는 아픈 몸과 마음을 이끌며 삶의 쳇바퀴를 돌고, 다른 이는 현실에 안주하며 무위도식하고, 누군가는 수많은 사람을 짓밟고 호의호식한다.

그렇게 처지에 따라 주변 환경과 사람이 달리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넓고 둥근 지구에서 사람들은 제각기 무언가를 동경하고 혐오하는 게 다르다. 그러다가 서로 모여 고쳐 나가면서 같은 시대를 산다. 그래서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활기찬 도심의 거리에서 다양한 연령과 스타일의 사람들이 걷고 달리며 자전거를 타고 대중교통을 오가고, 유리 빌딩과 네온사인, 그림자와 역광이 어우러진 모습 (AI GPT-5가 만든 그림)

 

세월이 지나 나는 다양한 환경에 사는 사람을 대하는 어른이 되었다. 여전히 저 너머를 그리워하지만, 생각을 자주 하기 힘들 정도로 바쁘게 지낸다. 그나마 바라볼 수단이 많아지고, 가진 돈도 늘어나서 가끔 쉬는 날에 훌쩍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 가장 높은 곳에서 도시를 바라보았다. 사람도, 차도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나무와 물, 사람이 지은 건물만 보였다. 저 너머를 자주 바라보는데, 정작 높은 곳에서 보이지 않으니, 기분이 묘했다.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바라보는 풍경도 달라진다'라는 말이 다시 와닿았다.

높고 먼 곳에서 볼 수 없지만, 낮고 가까운 곳으로 가니 많은 사람이 다양한 움직임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게 보였다. 세상이 하나의 기계라면, 사람은 부품, 그들의 움직임은 돌아가는 에너지다. 모든 사람이 갑자기 움직이지 않으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세상은 돌아가지 않는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우리의 움직임이 만든 에너지라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

그렇게 둘러본 곳은 지금 사는 곳과 같으면서 다른 점이 많이 보였다. 이곳 사람은 친절하고 정이 넘치지만, 때론 성격이 불같아 인내해야 할 일이 많았다. 반면 저 너머 사람은 모든 게 느긋해 보였다. 그 때문인지 아예 삶의 터전을 옮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사람과 세상일에 고민하고, 마음을 나누는 모습은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서로를 오가는 사람이 많다. 소통하고 바라보는 수단이 많지만, 직접 오가는 일만큼 좋은 건 없다. 한세상임을 깨달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먼저 할 일이 많지만, 생각나면 머리와 마음에 저장해두고, 시간을 내서 표현한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직접 만나는 게 어렵지만, 자주 연락하며 힘을 모아 고민을 풀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게 복잡하고 답답한 세상 속 희망을 찾기로 했다. 어렵고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면 더 나은 세상이 될 거라 믿는다.